금 태환과 달러 체제
달러를 정해진 양의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된 뒤에도 국제 거래에서 달러는 계속 쓰였습니다. 금 태환 약속과 달러 수요는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린 앨든은 2022년 글 What is Money, Anyway?에서 이 전환의 편익과 비용을 금 보유 제한, 국제 결제, 미국 산업의 변화로 이어 설명합니다.
정보는 빨라지고 결제는 느렸던 시대
앨든은 돈의 구조가 기술이 등장한 순서에 따라 정해진다고 봅니다. 그는 세계사를 여러 번 다시 돌려도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자동차가 비행기보다 먼저 나올 것이라고 비유합니다. 뒤의 기술이 앞선 기술을 토대로 발전하기 때문에 순서가 경로를 정한다는 뜻입니다. 앨든은 정보 전송과 결제에도 이 논리를 적용합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신 이전에는 정보와 거래가 사람과 배가 움직이는 속도로 함께 움직였습니다. 정보가 물리적 이동보다 빨리 갈 수 없었으므로, 종이와 인쇄술, 아날로그 암호화 기술은 모두 돈을 더 효율적으로 옮기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전신은 1840년대에 발명되어 1860년대에 널리 퍼졌고, 완전히 자리 잡은 때는 20세기 초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때부터 정보는 거의 즉시 전달되었지만 금 같은 물리적 결제는 여전히 느렸습니다. 앨든은 바로 이 시점이 돈이 "부서지기" 시작한 때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이 격차를 메우는 방법이 중앙화였다고 봅니다. 동전과 지폐를 꺼내 거래할 수도 있지만 같은 은행을 쓰면 훨씬 쉽습니다. 다른 은행을 쓰는 사람과 거래하려면 은행 사이의 이전이 필요한데, 매번 이전하는 것보다 더 위에 있는 은행을 신뢰하는 쪽이 쉬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찰을 해결하다 보니 중앙은행에 이르렀고, 여러 층의 중앙화가 쌓였다는 설명입니다. 사람들이 이 장부에 의존하면서 돈이 무엇인지도 그 장부가 정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앨든은 화폐가 실패했을 때 금본위로 돌아간 나라가 없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런 나라들은 새 화폐를 만들거나 달러로 옮겨 갔고, 그는 금이 순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1860년대 이후 2009년까지를 즉각적인 거래는 가능했지만 결제는 그렇지 못했던 시기로 보고, 2009년 비트코인이 나오면서 디지털 결제가 처음으로 정보에 가까운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환경의 비용에 대한 그의 설명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임금이나 가격을 올려 구매력을 지키려는 부담이 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자에게 놓인다고 합니다. 가격이 자주 바뀌면 식당은 메뉴를, 기업은 계약을 다시 고쳐야 하므로 그만큼 불필요한 비용이 생긴다고도 말합니다. 이 비용은 작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랜 기간 쌓인다는 것이 그의 해석입니다.
앨든은 비트코인을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흐르며, 검열하기 매우 어려운 돈이라고 요약합니다.
금 보유 제한과 평가절하의 순서
1933년 미국은 금화·금괴·금 증서의 보유와 인도에 관한 제한을 시행했습니다. 예외가 있었으므로 모든 금과 모든 개인 소유가 전면 금지되었다고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듬해 금의 공식 달러 가격이 바뀌면서 달러는 금에 대해 평가절하되었습니다.
앨든은 사람들이 정해진 가격으로 금을 넘긴 뒤 금과 달러의 교환 비율이 바뀐 순서에 주목합니다. 그는 금 보유 제한이 통화 가치 하락에 대응할 선택지를 좁혔다고 해석합니다. 제한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지만 시기와 대상에 따라 구체적인 조건은 달랐습니다.
그는 케인스가 금본위제를 비판한 표현과 정부가 금을 거둬들인 조치를 대조합니다. 반면 금본위제를 비판하는 관점에서는 금과의 고정 교환 약속이 공황에 대응할 정책 여력을 제한했다고 봅니다. 금의 성질에 관한 평가와 특정 통화제도의 위기 대응 능력에 관한 평가는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레튼우즈의 약속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마련된 체제는 각국 통화를 달러에 연결하고 달러를 금에 연결하는 구조였습니다. 달러의 금 태환은 미국 시민의 일반적인 권리가 아니라 외국의 통화 당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약속이었습니다.
국제 거래에 필요한 달러가 늘고 해외의 달러 청구권이 확대되면 미국의 금 보유와 태환 약속 사이에 긴장이 생깁니다. 앨든은 은행 신용과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방식이 제한된 금 보유와 맞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이것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그의 관점입니다.
1971년 미국은 외국 통화 당국에 대한 금 태환을 중단했습니다. 1944년의 약속은 27년 뒤 중요한 전환을 맞았습니다. 이 사건은 금이 사라졌다는 뜻도, 달러 수요가 사라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원유 결제와 더 넓은 달러 수요
앨든은 이후의 달러 체제를 설명하며 산유국과 미국의 관계, 달러로 이루어지는 원유 거래를 강조합니다. 여기서 페트로달러는 원유 거래와 수입의 달러 사용을 가리킵니다. 달러를 일정량의 원유로 교환해 주는 태환 제도는 아닙니다.
그의 설명을 모든 산유국이 언제나 달러로만 원유를 팔아야 한다는 단일한 법적 의무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달러 수요에는 원유뿐 아니라 무역, 금융자산 보유, 달러 표시 부채의 상환도 작용합니다. 특정 상품의 결제 관행만으로 국제 통화의 지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앨든이 인용하는 루크 그로멘은 냉전기에 만들어진 국제 질서를 이후에도 유지한 비용을 비판합니다. 이는 두 분석가의 역사 해석이며, 군사력과 통화 지위의 관계에 관한 확정된 단일 결론은 아닙니다.
강한 통화가 남기는 비용
국제적인 달러 수요가 달러 가치와 미국 금융자산 수요를 떠받치면 미국은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반면 달러가 강하면 수출품은 외국 구매자에게 비싸지고 수입품은 상대적으로 싸집니다. 앨든은 이 구조를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변화에 연결합니다.
그는 천연자원 수출로 통화가 강해지면서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네덜란드병’에 빗대 설명합니다. 달러의 국제적 사용이 자원 수출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과 아시아 제조업의 변화도 이 관점에서 읽습니다.
다만 개별 산업의 변화에는 생산성·기업 전략·기술·무역 정책도 영향을 줍니다. 앨든의 논지는 국제 통화의 지위가 편익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 편익과 비용을 구분하는 일은 달러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거나 특정 자산을 사야 한다는 결론과는 다릅니다.
영상
원본 영상: 부서진 돈, 브로큰 머니(Broken Money) 저자 린알든 대담 (공개일: 2025-04-28)